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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 Glass to Grass

Su Ji Lee


2025.12.3 - 2026.1.4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한 해가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름에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창밖으로 초여름의 구름이 흐르고 있었고, 오늘의 전시를 위해 다시 마주 앉았을 때 가로수는 녹음을 모두 가을로 물들이고 있었다.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을 무렵에는 길목마다 소복하게 쌓인 흰 눈을 보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질서마저도 자연스레 주관적인 인상을 겹쳐서 인식한다. 하물며 과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나 사물마다 고유한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저 보편적인 흐름을 따를 뿐이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간다.    

  

   이런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 구조에 관하여 이수지는 사진을 통해 지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 그의 사진은 특정 사물이나 장소에 관한 찰나의 기록보다 그의 주관 속에서 존재했던 임시적인 순간에 가깝다. 전시 Glass to Grass에서 그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것을 통해, 우리가 본 것을 의심 없이 수용하곤 하는 시각적 태도를 조용히 흔든다. 예컨대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듯 보이는 개미의 모습이 그렇다.  


    생각해보자. 지하에서 군집해 살아가는 개미가 홀로 지상에 올라와 뫼비우스의 띠를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가? 눈앞에 주어진 단서만으로 개미가 살아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표면 위에 드리운 작고 가느다란 그림자만이 개미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사실을 믿게 할 뿐이다. 이어 붙인 흔적이 드러난 뫼비우스의 띠는, 당신이 ‘보았다’고 믿는 장면과 그것이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정말 일치했는지 되묻게 한다. 시간을 들여 골몰해야 하는 그 물음을 잠시 미루고 전시장의 중앙으로 나서서 한 바퀴 천천히 공간을 둘러본다. 직선과 직선이 만나다가 안쪽으로 휘어들어 갔다 다시 나오는 굴곡진 벽을 따라서 걷다 보면, 시선이 머문 곳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놓여 있다. 


   나선형으로 자란 잔디, 흰 눈 위에 단정히 찍힌 점 세 개와 그 옆에서 어둠 속에 비슷한 구도로 떠 있는 별들. 모양이 닮은 안개와 구름이 대지와 도심 상공을 드리우고, 가로로 부유하는 깃털과 꺼지지 않는 성냥 불, 조각난 얼음까지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전시장을 에워싼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점에 다다른 시선 안으로, 손끝의 뫼비우스와 처음 보았던 불투명한 흰색 고리가 하나의 장면으로 겹쳐 들어온다. 

   중력이 사라진 듯 공중에 머물러 있는 깃털처럼, 이 공간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신뢰해 온 시지각의 근거로부터 멀어져 있다. 대신 작가가 구축한 또 다른 규칙이 이곳의 풍경을 완성한다. 그렇게 조성된 작가의 임시적인 풍경 안에서는 낙하나 상승처럼 인과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등장하지 않는다. 눈으로 만든 이미지를 실제 장소에 포개어 두고 안개와 구름처럼 보이게 만든 그의 방식은, 세상을 안팎이 똑같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시선을 뒤틀고 변주되는 표면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비현실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 현실과 그 순간이 충돌하며 생긴 간극을 지우기 위해, 익숙한 지식과 경험을 덧입혀 낯선 감각을 지우곤 한다.    


   그러나 이수지의 사진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 간극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지우려고 하는 인식의 흐름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사실인 척 위장한 것들이 교묘하게 눈속임을 벌이는 시대에, 그가 택한 눈속임의 방식은 이어 붙인 자국이 고스란히 노출된 뫼비우스 띠처럼 ‘내가 당신의 눈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밝히고서 관객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세계를 한 시점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우리의 인식이 언제나 미세하게 어긋나 있으며, 동시에 그 어긋남을 통해 세계가 확장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와 세계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오차가 놓여 있다. 그래서 세계와의 연결은 언제나 일대일로 맞물리지 않고, 굴곡진 렌즈를 통과한 듯 휘어진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계가 우리에게 평생의 관찰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점으로만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이수지는 가시적 세계로부터 추상적 세계를 동시에 느끼며, 서로 다르게 다가오는 두 장면이 결국 동일한 좌표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수지의 시선을 경유해 세계가 스카이라인이 정돈된 단일한 화면이 아니라,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게, 때로는 다채로운 굴곡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전시는 그 다층적인 세계를 바라볼 새로운 시점을 우리에게 남긴다.   



이연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