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도시

lost signal


주슬아

Sla JOO

2026.5.20 - 6.19

Project1. 전시후원작가

요새를 구축해 도시를 수호했던 흔적과 유리, 콘크리트로 만든 신식 시설이 같은 주소지에 있는 것만큼 현대적인 풍경이 있을까. 오래된 도시일수록 옛 건물들이 새로 조성한 거리와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고, 그 예스러운 것들이 밤에는 역사성을 띠기보다 그 자체로 남다른 분위기를 남긴다. 어두운 밤에는 낡거나 부서진 흔적들이 잘 보이지 않고, 그저 무상한 세월과 지나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은유하는 장식이 되기에, 야경 속에서는 새로운 것도 한참 철이 지난 것도 구분 없이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어쩌면 그것은 햇빛 아래에선 보기 껄끄러웠을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흐릿해진 덕분일지도 모른다.


다시 어둠의 낭만을 되새겨보며 주변을 둘러본다. 은은한 보랏빛 조명을 거쳐 내려온 지하에는 주슬아가 3D 프린터로 출력한 인천 강화의 유적 일부가 곳곳에 있다. 마치 잘못된 좌표에 소환된 듯이 유적들의 형태는 폐허처럼 조각나 있고, 어떤 비석은 표면에 새겨진 글자를 안쪽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비어 있다. 낡고 해진 천마저 분위기를 갖는 몽환적인 할로겐 조명 속에서 황폐해진 낭만을 익숙하게 취해보려 할 때, 형사 노멜의 사건 일지와 스크린으로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낸 아키비스트 서윤의 이야기는 이곳의 정체를 드러내는 증언으로 작동하면서, 전시 공간을 단순한 폐허를 넘어, 또 다른 은폐의 현장으로 전환한다.


먼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가의 SF 소설 『길을 잃은 도시』 는 한 도시가 국유화되면서 모든 기록이 중앙 정부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그려 나간다. 서촌 일대의 기록을 담당하는 정부 아키비스트 서윤은 지역 유물을 시티워치로 기록하던 중 시공간의 균열로 추락하고, 그곳에서 강화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을 발견한다. 그가 마주한 강화의 유적들은 국가 성장의 기조와 지역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설정한 ‘호국’ 정체성 아래 은폐된 트라우마적인 기억들이다. 작가는 이 비현실적인 장치를 통해 옴니버스 형식의 서사를 풀어나가며 과거를 다시 증언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도시가 기억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기억의 배제는 도시민에게도 이어진다. 청년 월세 가구 노동자, 취업 준비생, 회사원으로 등장하는 세 인물 하은, 미진, 수연은 각자의 배경 속에서 시공의 균열을 목격하고, 이를 계기 삼아 시스템에서의 탈주를 결심한다. 그런데 시티워치와 노멜의 수사일지는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탈이 아닌 ‘실종’으로 기록한다. 이것은 계산되지 않은 오류로서 제거해야 할 노이즈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복적인 행위는, 하나의 시스템이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그 기록을 관리한다는 소설 속 설정이 단순한 허구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하는 현실적 지표가 된다.


모든 기록은 동일하게 기록되지 않는다. 공공을 위해 폭넓은 기록을 권장하면서도 어떤 기억은 보존되고,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잊힌다. 그렇게 가치와 활용성을 기준으로 도시는 계속해서 껄끄럽지 않은 과거를 추려내어 도시 경관을 고르게 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현대의 디지털 기술의 복원과 아카이브 기술이 지닌 메커니즘과 궤를 같이한다. 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 분야가 물리적 원형을 가상의 데이터로 추출하는 기술과 결합함에 따라, 3D 스캐닝과 디지털 아카이빙에 관련한 기술은 파괴된 유적이나 유물을 복원해 다시 현재의 좌표 속으로 불러오는데 적극 활용된다. 인류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전 세계의 문화재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해 공익적 차원에서 보존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희망적으로 다가오지만, 공공 기록으로 남겨지는 과거는 대개 트라우마적 기억보다는 안팎으로 매끄럽게 소비될 수 있는 역사적 자원으로 선별된 것들이다. 주슬아는 동일한 기술 매체를 이용해 강화가 한때 은폐시켰던 과거의 기록을 이곳에 소환하지만 그 유적들은 온전한 형태가 아니다. 실제 현실의 유적 자체가 기록과 지리적 위치가 서로 어긋나 있거나, 일부 형태만 수정된 채 남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는 거듭해서 무해한 폐허를 골라내어 현재의 시공으로 중첩한다. 구시대 양식의 시설이 거리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반사하는 거대한 유리 건물이 한 자리에 놓인 풍경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풍경이라기보다도 도시의 매끄러운 경관을 위해 서로 다른 시대의 표면을 단일 조건에 맞춰 정렬한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시공간의 기억이 통제되고 의도적으로 방치되고 있을 때, 어떤 과거는 반복해서 복원된다. 조화로운 경관을 위해 도시는 폐허조차도 감상이 가능한 풍경으로 재배치시킬 수 있다.


은색 그리드들이 바닥과 벽, 천장까지 공간 전면에 겹쳐진 전시의 풍경으로 돌아가 보면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목격한 시공의 균열은 이런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졌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소란하지 않게 반짝이는 은빛의 그리드는 낙관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부드럽게 시선을 이끄는 빛이다. 그리드가 새겨진 공간의 면들을 따라 시선을 옮길 때, 그리드와 맞닿은 복원된 유물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작은 나무로 이루어진 숲들을 발견하게 된다.¹ 전시장의 유적이 무거운 기억의 조각들을 지지체로 삼은 낭만으로 소비할 수 없는 폐허라면, 과거의 유산들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인 도시의 야경 속에는 화려한 불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속이 빈 플라스틱 야자나무의 그림자가 오래도록 함께 남아 있다.



이연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1]  3D 프린팅으로 가상의 사물을 출력할 때, 바닥면으로부터 출력물을 받쳐줄 지지체를 함께 제작한다. 그 중 재료를 경제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나뭇가지 형태로 뻗어나가는 ‘트리 서포트(Tree Support)’ 방식은, 외관상 단단한 나무처럼 상부 구조를 지탱하는 듯 보이지만 작은 압력에도 쉽게 바스러지는 가변적인 속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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