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Studio Project 3 - 《빛깔의 문장》


2023.9.20 - 2023.10.15 

Project 3. 큐레이터 기획전

박원근×강석호

Wongeun PARK × Seok Ho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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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가 새롭게 선보이는 “Studio Project 3”은 미술대학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난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작업과 전시에 대한 큐레이팅을 통해 미술의 현장성과 세대를 넘나드는 예술적 소통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격년제 기획 프로그램이다. 작년 7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세 명의 신진작가(박원근, 양희성, 정다정)가 일 년 동안 크리틱을 통해 작업 방향을 고민하며, 태도와 생각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선배작가들을 만났고, 큐레이팅을 거쳐 함께 하고 싶은 선배작가(강석호, 장재민, 함진)와 2인전을 준비했다.  


- 큐레이팅과 멘토링 방향

이 프로그램은 신진작가의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업의 역량과 시야가 확장될 수 있는 방향, 그리고 사루비아의 큐레이팅과 선배작가의 멘토링으로 채워질 여백의 공간이 존재하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신진작가 스스로 그 지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미술 현장에서 함께 고민해 나가는 과정은 성과를 떠나 값진 경험이다.

 

박원근 작가는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회화 매체에 대한 자신만의독특한 조형세계를 갖고 있으며, 이 사고를 드러낼 수 있는 회화적 실험과 소통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작업에 대한 열정과 펼치고 싶은 작업거리가 풍부한 상황은, 신진작가에게 무엇을 먼저 작업의 맥락으로 가져올 것인가의 질문과 선택을 요구한다. 나의 이야기로 시작된 작업은 작가와 작업의 의미를, 내 작업 유형 사이의 연결고리는 나의 회화적 언어와 맥락을 형성한다. 조금 더 거리를 두면,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자신만의 조형적 사고와 감각이 어떻게 비치며 읽히는지 바라볼 수 있다. 나의 작업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해 보는 일은 작업의 초기 단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다.

 

시각예술의 본질이자 창작의 근원이 되는 ‘눈’의 역할과 의미, 감각을 회화로 풀어내려는 박원근 작가에게, 대상과 회화의 관계를 ‘본다’는 시각으로 끊임없이 탐구해온 강석호 작가의 작업세계는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된다. 선배작가로서 강석호 작가는 적절한 속도와 균형감각으로, 넓고 따뜻한 시선으로 작업과 작가, 삶의 관계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생각을 나누고자 했다. 한 작가의 조형세계를 연구하고 그 행보를 뒤쫓아 음미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나와 내 작업의 위치를 생각하게 만들고 앞날의 여정을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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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 보지 못하는 눈


예술작업은 다르게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는 우리의 인식과 생각에 달려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에 타인과 세상, 그리고 나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다. 특히 예술가의 눈은 시각 너머를 보는 눈이며, 그곳에서 발견한 심상과 의미는 지향하는 예술세계가 된다.


박원근, 강석호 작가 모두 "눈"이라는 인식·감각 기관을 통해 ‘본다’는 행위에 집착하지만, 눈이 향하고 있는 방향과 기능, 감각은 사뭇 다르다. 두 작가는 눈을 통해 세상과 나(작가), 회화의 관계를 설정한다. 예술가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관계는 소중한 만큼 궁금하다. 가변적인 이 관계의 명확함을 찾아 나가는 조형적 사고와 실험이 작업이자 태도이며, 작업을 지속시키는 동력이다. 이들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눈 너머의 세상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했는지 이번 전시는 그 관계와 시점의 간극을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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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관계에 대한 사색” 


내가 고민하는 <관계>라는 테제는 어쩌면 회화라는 형식 이전에 사람에 대한 그 무엇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무엇이 모호함인지, 유연함인지, 불확실함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정 부분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내 삶의 태도에서 보이는 상식이 내가 대상을 인식하려는 사람 너머에 상흔이라는 형식을 빌려 프레임 속에 남겨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또 다른 시각의 차이에서 인식되는 관계 또한 어쩌면 내 삶의 불확실한 형태와 내 작업에서 보이는 모호한 형식에 서로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마치 프레임에 표현된 조형 요소의 구성 방법과 취미로 얼룩져버린 표현을 통해서 내 일상의 한 단면을 소소하게 변명하듯이 말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강석호 작가노트 (강석호, «3분의 행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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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림을 통해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한 것이 있다. 닿을 수 없었던 사람의 정원, 이웃을 은유하는 무지개와 먹구름, 소설 속 문장들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머무른다. 장소, 대상, 문장으로부터 내가 변하게 된 지점을 목격하며 마주할 심상의 주석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영화감독 데릭 저먼이 머물렀던 황무지 위의 오두막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겪어온 시간에 대해 상상해왔다. 그리고 그가 심고 가꾼 정원과 일상을 나의 시간대로 가져온다. 그간 집의 외부를 바라봤던 시선을 집의 내부로 들이며 그와 나의 눈을 겹친다. <태양의 검>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팔로마르» 속 주인공이 태양으로부터 형성된 바다 위의 반사광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자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수평선에 존재하는 태양의 반사광을 나만의 심상과 시공간으로 가져와, 여러 날들의 풍경으로 시선을 분리시키면서 동시에 미약하게 이어본다.


“언젠가 엄마는 제게 사람의 눈이야 말로 신이 만든 가장 외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죠. 어떻게 세상의 그 많은 것들이 안구 위를 스쳐 가고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느냐고, 눈은, 구멍 속에 혼자 머물며, 1인치 떨어진 곳에 똑같이 생긴 하나, 자기만큼이나 굶주리고 텅 비어있는 또 하나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죠.”


(오션 브엉,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중에서)


이 문장은 결국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나의 생각을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텅 빈 눈동자> 작업의 주석이 된다.


그림은 내가 세상을 목격한 심상을 번역한 문장이며,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 이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림을 통해 나를 보았다. 이 문장의 어순은 바뀌어도 된다. 이어지지 않는 문장을 이어보면서 내가 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을 변화시키려는 시도의 찬란함을 배운다.


박원근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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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작가에게 회화는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다. 이 눈을 통해 작가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 그 너머를 상상하며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한다. 열린 눈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중첩시키며 작가의 내면과 맞닿아 다른 감각의 시공간을 환기시킨다. 조우한 심상은 능동적인 주체로 세상과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자유를 작가에게 선사한다. 시적 은유로 가득 찬 감미로운 풍경은 화려한 빛깔로, 눈부신 빛으로, 때로는 암흑의 어둠으로 내면의 감성과 외면의 경계가 무화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시선의 경계로 인해 무엇을 보고, 못 보고 있는지 우리에게 생각의 눈을 요구한다.


강석호 작가의 눈은 대상의 이미지를 향한다. 눈의 기능, 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이미지를 다루는 회화 매체에 대한 개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조형적 접근 방식은 그림 그리는 과정으로서의 행위와 바라보는 시선의 의미를 일깨운다. 사건으로서의 특정 시간에 멈춰 선 대상의 이미지를 포착해 관조의 시점으로 거리 두기를 시작하면서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캔버스 표면에 가까워지기를 시도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가 물리적으로 필요로 했던 시간과 시선의 거리는 작업을 감상하는 관점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창작의 과정에 개입된 시공간이 결과물로서의 회화적 시공간에 공존하며 연결된다. 이미지로서의 대상을 인지하고 탐미하며 훑어내린 시선은 결국 화면의 색채와 형태, 표면의 질감을 주목하게 만들고, 미묘하게 화면 위에서 감각적으로 감응한다. 회화 매체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리넨 천 위에 얇게 쌓아 올린 물감의 붓질, 선과 색이 빚어낸 조형적 아름다움을 맛보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강석호 작가의 출품작 4점은 박원근 작가가 선별하였다. 전시 내용을 구상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작업과 연결고리를 발견한 작품들이다. 서로의 작품이 조응하며, 유사함과 다름이 만들어 내는 관계가 다양하게 반영되도록 작품의 배치와 동선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가벽 사이 공간으로 인해 시선은 다각적으로 작용하며, 관람의 동선이 마주하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 여러 관점으로 그림간의 상관관계를 연출한다. 전시 공간과 작품의 관계는 비어있는 여백이 존재할 때 숨 쉬 듯 살아있으며, 흐름을 타고 움직이며 변화한다.


회화적 방법론이 다른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창작의 동기를 부여받고, 그 작업을 의식하며 만든 이번 전시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와 맥락을 연계하는 ‘관계’의 장이 되었다. 전시 또한 하나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해 조화롭고 의미 있는 하나의 문장을 짓고 다듬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는 한 문장의 질문으로 대신한다.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빛깔과 의미를 지녔는지, 우리의 눈은 그것을 볼 수 있는가?” 여러 빛깔의 문장으로 답변이 채워지기 바란다.


황신원|사루비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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