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다

Zolida

2024.4.3 - 5.3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송지유

Jiu Song



작업은 발생한다. 삶이 물려준 습관과 흔적, 태어날 때 심장 속에 품고 나온 천성, 피부에 잔류하는 감각들, 그리고 잡을 수 없는 세계를 품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한 지점에서 만날 때 발생한다. 송지유는 하마터면 잊혔을 미묘한 감정들을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한다. 그가 작업을 통해 기록하는 것은 장면이라기보다는 체험으로, 희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조용하고 사적인 경험들이다. 생각은 언제 작업이 되는 걸까? 송지유는 그림을 기대기 위한 합판이나 언젠가 사두고 쓰지 않던 재료처럼 작업실의 일상을 함께하던 사물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작업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조각 조각 떠오르는 단어를 날것 그대로 수집해 작업실 어느 한 구석에 심어두었다가, 흩어져 있던 이야기가 문득 재료 위에 떠오를 때, 그리고 시간에 의해 적당한 모습으로 다듬어졌을 때 퍼즐을 맞추듯 작업을 이어나간다.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퍼져나가는 파동처럼, 송지유의 작업은 물성이 작가의 생각에 닿는 순간 발생한다.


송지유는 밀려오는 졸음처럼 나른하게 떠오르는, 가끔은 넘쳐올라 숨을 조르는, 혹은 이국적인 이름— Zolida —처럼 연고 없이 생생한 감정들을 건져내 자신만의 언어로 써 내려간다. 나른한 글과 그림 속에는 슬픔, 연민과 사랑 같은 비정형적일수록 명확해지는 감정들이 담겨있다. 작업은 잠에서 깨어나 꿈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적은 말들, 일기, 그리고 파편적인 단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송지유에게 텍스트를 읽고 정리하는 과정은 ‘머리로 이해할 필요 없는 [...] 부드러운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운동 같은 것’[1]이다. 일상으로부터 떨어져나온 단어와 형상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연민과 그리움의 얼굴을 대신하고, 피부와 마음으로 기억하는 말들을 추적한다. 때로 미술은 천장과 바닥 없이 요동치는 마음을 매체로써 부동의 물질로 객체화하여 대면할 수 있게 한다. 송지유는 파도처럼 밀려와 곧바로 부서져버리는 감각을 재빨리 붙잡기 위해 가까운 곳에 머물던 재료를 쥔다. 흩어지던 감각은 일상의 단면으로서 글 속에 담기거나 조각이나 그림 속으로 스며들면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송지유는 보고 싶은 것을 바라보기 위해 작업을 한다. 영원히 가변적인 감정들, 시간을 거스르며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 역사속 인물들의 기록되지 않은 일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무정처한 향수를 그린다. 백일몽처럼 일상과 상상 사이를 부유하는 생각들을 글 속에 담거나, 오랜 시간 바라보던 사물 속에서 새로운 형상을 발견해 곧바로 작업으로 옮기기도 한다. 송지유의 작업에서 쓰기와 만듦 사이에는 위계가 없고, 상황에 따라 적당한 재료를 취한다. 세계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감각의 형상을 찾기 위해 드로잉, 회화, 조각, 글 등 매체에 경계를 두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다. 같은 맥락 속에서도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무엇을 보았는지를 묘사하기보다는 체험한 것을 사물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게 한다. 가령, 이미지를 환기시키기 위해 오히려 화면을 잘라내기도 한다[2]. 잘려나간 화면이 지면에 닿으며 만들어내는 굴곡은 작가의 이미지를 몽상과 현실 사이에 걸쳐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필라멘트 조각 <머리카락>(2024)과 서로를 반사하며 이어진다.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조각이 다른 조각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단어로부터 전해지는 생경한 촉감을 머릿속으로 탐색하고, 단어가 벗겨진 자리에 드러난 윤곽과 음영을 그린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송지유는 사루비아 전시장의 공기와 형태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벽의 요철이나 깨진 부분처럼,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특징을 관찰하며 즉흥적으로 서사를 확장해나갔다. 앞서 말했듯, 송지유의 작업은 백일몽처럼 떠오른다. 이미지와 재료가 편안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을 교감하고, 친숙해진 재료와 함께 놀이하듯 몽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나간다. 그는 문득 자신이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이어져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삼킨 하루는 소화되어 나의 일부가 된다[3]. 불 꺼진 방의 적막을 가르는 햇빛, 주고받은 다정한 말들, 애정이나 애증, 물과 쥬스처럼 일상을 통해 흡수된 것들이 내가 되었다가, 작업을 통해서, 아이처럼, 바라볼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 모래알들이 포개어 누운 자리에 백사장이 드러나고 단어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 시가 쓰이는 것처럼, 송지유의 형상들은 각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만 서로를 투영하며 시작과 끝없이 펼쳐지는 꿈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곳 사루비아에서, 현실과 꿈 사이에서 이음새 없이 지속되기 위해 미완으로 남겨지는 말들의 테두리를 더듬어보자.


문소영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1] 작가 노트. 2023.  

[2] 송지유, <아무도 갈매기의 성취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피아노 연주가 들렸는데 악보를 넘기는 소리가 컸다 바라보니 눅눅해졌고 전구없이 마룻바닥 위로 흘러내린다 카펫의 물결 문양이 화분의 잎사귀로 옮아간다 잎사귀의 날카로움이 하얀 커튼의 가장자리로 옮아간다>, 2024, 장지에 수채, 색연필, 연필, 160 x 147 cm.

[3] 인터뷰때 나눈 작가의 말을 참고했다, “몸에 물이 닿는 것으로 물이 나의 일부가 되었고, 물과 나의 경계가 사라져 내 안에서 새로운 물의 아이가 생성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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