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Careful What You Wish For


2024.8.21 - 9.21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정아롱

Arong Chung



주어진 삶의 시간은 커다란 운명 안에서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정아롱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원형’❋ 의 힘을 빌려 다양한 매체와 서사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이번 전시 제목인 《Be Careful What You Wish For》이 말하듯,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매직의 힘을 작가 스스로 믿으며 보여주고자 한다. 그 매직은 신화적,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도상들, 그리고 세라믹과 유화, 템페라 등이 어우러지며 처음으로 ‘세계와 나’를 하나로 섞어 보여주고, 동시에 오래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초월적 존재들을 연결했던 예술의 마술성을 다시 소환한다. 그러한 힘이 작용했을까. 모든 것이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상징적인 기호로 나타나며, 표현했던 모든 형식과 내용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래서 회화, 드로잉, 오브제, 입체 등의 형식은 달라도 서술되는 내용은 서로 관통한다는 것을 작가 스스로 표명한다. 이는 자기 세상 안에서 생각하는 모든 것, 다시 말해 자신의 그림 안에서 ‘그렇게 되리라(fiat)’라는 주문을 외는 작가의 작업태도이다.

 

정아롱 작가의 정체성은 자연이 주는 원초적 경이로움에 대한 이끌림과 여러 나라를 오가며 얻은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섞여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각자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는 대상을 생각하고 구현하며 그림이 탄생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자아를 초월하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 믿음이 신비한 매직의 순간으로 이어지면서 작가의 자기실현을 위한 ‘원형의 세계’를 꿈꾸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예전에 겪었던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무위의 상태를 경험한다. 본인이 직접 깎아서 만든 나무 프레임 위에 자화상의 눈을 수십 번 그리며 쌓아 올리다 그런 매직의 순간을 또 맞이한 것이다.

 

작가는 지금의 삶을 반영하는 모든 사건들과 신비를 목격하듯, 크게 뜨인 눈, 기적의 행사를 명령하거나 소원하는 손, 탄생의 순간에 임박해 금이 간 알,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을 작가 자신의 자화상과 그의 또 다른 분신인 기사 등 다양한 형상을 만들었다. 회화로 작가의 원초적인 세계를 새롭게 드러낸 <In the Wood>는 실재 현존하는 장소를 그렸지만, 현실 너머의 이데아를 꿈꾸는 환영 그 자체를 표현했다. 붓질을 했지만 붓질이 없고, 색을 썼지만 색이 없는, 그러니까 드러낸 자아가 그 속에 파묻힌다. 빠져들수록 신비롭고 고유한 영역은 다른 차원을 인도하거나 그 환영에 사로잡혀 이 공간 전체를 휘감는다.

 

한 존재로서의 ‘나’, 작가로서의 ‘정아롱’, 작가의 환영이 물질로 생성된 ‘작업’, 이 세가지의 관계가 또 하나의 상징인 삼각형 좌대에 빗대어 지고, 작가의 내면의 세계를 벗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를 열어 준다. 넓은 의미에서 이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 도상은 마술적 상징을 만드는 원천이자 상징의 기원이 되는 ‘원형’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의 얼굴, 물고기, 정령들과 마주하는 환영적 체험이 담긴 <In the Wood>, 기적 같은 스토리가 담긴 성경 구절, 인터뷰 내용 등을 수공예로 담은 ‘에그 템페라와 그림들’, 종교화의 일종인 3단 제단화 형식을 빌어 소원에 관한 내용을 표현한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용감히 행동하고 견뎌라. 인내하는 자가 승리하리라.’라는 라틴어 경구인 <Fac Fortia et Patere. Vincit qui Patitur.>, 동굴에 은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에 작가 자신을 투영한 <Into the Cave/Out of the Cave>, 싸우는 자, 추락하는 자 등 자기를 실현하는 인간의 7가지 원형적 형상들을 표현하며 그려낸 ‘메탈 포인트 드로잉’ 시리즈는 모두 작가가 마법의 환상을 이루고자 하는 ‘관념과 상징’을 통해 하나로 엮인다.

 

정아롱 작가는 이 시대에 드문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하며 자신의 존재방식을 만들어 나간다. 급변하는 문명 속에서 가속되는 현시대의 편리성은 역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걷는 작가의 속도와 상충한다. 느린 태도로 창작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작가의 내면에 숨겨진 저항과 반항을 솟구치게 하며,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고대 연금술사처럼 독자적인 노선을 지향한다. 그런 면에서 종교나 신화, 철학적인 이야기들과 서로 다른 매체의 사물적인 질서들을 아우르며 온전히 자기만의 독특한 시간을 유지한다는 것은 초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멈춘 듯, 우주와 같은 성역을 지키고 있는 작가 정아롱은 시대적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초연하게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되묻고, 여전히 그 힘을 믿으며, 수행하듯 작업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 믿음과 가능성이 세속적인 욕망과 물질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우리들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의 빛으로 비추어지길 기대한다.

 

이관훈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 원형(Jungian Archetypes): 칼 융(C. G. Jung)의 용어로, 개인적으로 습득되거나 전파되기보다 무의식에 잠재된 이미지나 행동의 보편적 형태


e-c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