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하나, 그리고 하나

One by One, and One

임지민

Jimin LIM

2026.4.1 - 5.1

Project 2. SO.S (Sarubia Outreach & Support)

SO.S(Sarubia Outreach & Support)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가 2015년부터 새롭게 시도한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품, 전시와 같은 창작의 결과물 이면에 감춰진 작가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과정 속에 큐레이터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3년 7월 공모를 통해 A, B, C 그룹 총 6인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이번 전시는 SO.S 2023-2026 프로그램의 진행결과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구하는 자리이다.


C 그룹. “신진과 중진 사이에서 작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


- 35세 이상 45세 이하의 작가 (1988년생-1978년생) 

- 개인전 3회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작가 

- 상업갤러리 전속 작가 지원 가능


SO.S의 C그룹 지원은 독특한 조형 언어를 토대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작품이 소개되었으나, 반복적인 노출로 고착된 자신만의 조형 언어 안에서 한계를 느끼며, 작품의 형식적 고찰과 주제 확장을 고민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이 작가군은 신진을 거쳐 중진작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C그룹의 프로그램은 작가의 기존 작업을 다시 돌아보며, 작품 포트폴리오 및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변화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찾아간다. 아울러 기획자, 평론가 등 전문가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향후 작업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외 전시활동과 작품세계를 심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주요 진행일정

2023.7      공모를 통해 1, 2차 심사를 거쳐 선정

2023.11    작업 크리틱 1

2025.7      작업 크리틱 2

2025.9      작업 크리틱 3

2025.11    작업 크리틱 4

2025.12    작업 크리틱 5

2026.1      작업 크리틱 6

2026.2      작업 크리틱 7

                 전시진행 미팅 1

2026.3      전시진행 미팅 2

2026.4      심층비평 진행 및 평론글 의뢰


참여 동기

아버지와의 이별(사별)이라는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고, 2010년부터 지금까지 나름의 변화 과정을 거치며 회화와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해 왔다. 작업이라는 것이 경험과 노력, 시간이 쌓여가면 자연스럽게 길이 다져지고 단단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굉장히 큰 벽이 앞을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어떻게 그려야 할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나”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하고 싶은 작업과 현실적인 상황 사이에는 괴리감이 쌓여가고, 늘어나는 작업 수에 작업 공간은 협소해지고, 작업의 크기들도 작아져만 갔다. 불안을 동력 삼아 쉼 없이 작업을 이어 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깊이 사유할 시간은 줄어들고, 나의 손과 감각에 익숙한 것들을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정점이 되었던 시기에 SO.S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사루비아의 지원 방향

이번 프로그램 및 전시의 핵심 방향은 개념을 세우거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닌, 고착되었던 습관을 해체하고 감각적인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데 두었다. 이에 따라 구도와 대상, 붓질, 색상, 작업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해 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작가가 풍경을 주된 대상으로 선택함에 따라, 과거의 참조점에서 비롯한 풍경화의 전형성과 서정성을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감을 인식해 나가도록 돕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정해진 틀 없이 다양한 시점을 오가며, 순간에 몰입하여 고유의 감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몇 차례 크리틱을 거치며 작가는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이전보다 빠른 호흡으로 신작을 작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렇게 감각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다, 시도했던 모든 것을 펼쳐 두고 다시 ‘임지민다운’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과정 또한 필요했다. 숱한 드로잉 가운데 날것의 생각과 자유로운 붓질이 잘 드러난 작업을 선별하는 한편, 작은 드로잉과 대비되는 큰 스케일의 작업과 공간 안의 벽화를 함께 선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외연의 형식을 본인의 것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는 결국 작가가 이전까지 탐구해오던 내면의 풍경과도 다시 맞닿게 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의 여정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방식을 새롭게 하는 과정임을 상기했다.



전시에 앞서, 산책의 시간이 있었다. 산책은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방황이고, 이내 자연스러운 위치를 찾아가게 되는 일이다. 임지민 작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일이기도 했다. 너무 소중했기에 그대로 묻어 두었던 기억을 하나 하나 다시 꺼내어 보는 일도 그에게는 일종의 산책이었다. 자신처럼 작가였던 아버지의 풍경 사진 앨범은 당신의 작업을 위한 여행의 기록을 담고 있었다. 종종 동행하곤 했던 그 여정은 선명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공유된 기억인 동시에 흐릿한 기억은 그에게 상상과 창작의 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때로부터 길어 올린 것들 위에 지금의 생각을 덧입혀 작업하게 되었다. 이는 기록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거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동시에, 사진 앨범 바깥에서는 세계를 몸으로 감각하는 산책이 이어졌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멀리 떠나는 거창한 움직임 대신, 멀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작업실과 멀지 않은 산책길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낯선 감각이 올라오고, 스스로가 어색한 주변인처럼 느껴졌다. 아마 오랜만의 방황이었을 것이다. 지금껏 그에게는 그리고자 하는 것을 미리 작게 스케치해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신중한 태도가 익숙했다. 반면 이번 산책은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너머로 더 큰 가능성을 열어두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공간 안에서의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 중에 멀리서 혹은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때로는 물이라는 거울을 통해, 다양한 시점으로 자유로이 이동하며 보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애써 계획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발현되는 감각에 집중하며, 빨라진 호흡과 자유로운 붓질로 그것을 오롯이 담아내었다. 이렇듯 새로이 체득한 속도감 있는 호흡은 두 줄로 펼쳐진 드로잉 가운데 서서히 자취를 드러내고, 전시 공간의 두 벽을 채우는 대형 작업에서 여과 없이 발휘되며 소란을 일으킨다.


이전과는 다른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작업의 시작점이었던 아버지와의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지만, 망망대해에서 빠져나오려던 그는 오히려 몇 번이나 다시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덮어 두었던 앨범까지 꺼내어 펼쳐 보며,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택했다. 그러니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 파도 위에 올라선 듯, 누군가 나아갈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는 기분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 지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버지는 그의 삶 가운데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작업은 곧 슬픔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그때를 지금도 살아 있는 낯선 순간으로 만드는 매개로 존재한다고 감히 적어본다.


공간에 펼쳐진 숱한 드로잉은 모두 저마다의 장면을 간직한 것으로 하나 하나 살펴볼 구석이 있다. 작은 드로잉과 회화의 소재는 많은 경우 부모님의 앨범으로부터 발췌한 것이지만, 일부 요소는 상상으로 재구성된 풍경이다. 또한 작가 자신의 몸으로 거리를 거닐며 만난 풍경도 이와 구분 없이 함께 놓여 있다. 어느 순간 둘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서로 충돌하는 시공간이, 오래된 습관과 새로운 충동이 줄다리기 끝에 점차 합의점을 찾으며 어우러진다. 이어지는 장면들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때때로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본다. 그러면 불현듯 숲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투명한 자동차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김명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 

임지민 작가노트(2026)


†† 

이는 다음 문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너는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말하는 한 권의 책이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에두아르 르베(Édouard Levé), 『자살 - 제안들 31』(한국화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3,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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